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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도 제친 노인들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1. 6. 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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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없는 산속에서 모였다



70을 갓 넘긴 노인들은 코로나도 무섭지 않은가보다. 어디 그 뿐이랴? 코로나보다 더 서슬 퍼런 정부의 방역조치도 이들 앞에선 무색한 대책인 것 같다. 가야산에서 동쪽으로 멀리 벋어 나온 야트막한 산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지방도로 끝자락에 자리한 아담한 농막 한 채. 작은 냉장고와 간단한 생활도구, 비닐을 덮은 널찍한 평상이 있는 비닐하우스다. 앞마당엔 소박한 테이블 두 개와 걸상 몇 개가 있을 뿐이다. 그곳에 지난5월29일 세상에서 가장 흉허물 없다는 초등학교 동창 37명이 모였다. 2년 전 7순 기념모임을 가진 후 처음이었다.


올 봄의 날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렸던 궂은 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노심초사 하며 기다렸던 날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는지 그 날은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점이 한가로이 떠도는 맑은 날씨였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해맑은 초여름 햇살이 가득했던 하루였다. 이들의 모임을 축복하려는 듯 불어오는 산들바람의 감미로운 속삭임이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다. 지난해엔 코로나 광풍 때문에 한 번도 모이지 못했었다. 물론 몇몇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모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여럿이 한꺼번에 모인 건 처음이다. 그래서 이번 모임의 반가움과 기쁨은 유난히 컸던 것 같다.


재작년까지는 매년 이맘때 소백산맥 근처의 명승지들을 찾아 모임을 가졌다. 고향과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만나기 쉬운 중간지점이다. 그날이 되면 대구와 고향에 사는 친구들을 태운 버스가 북으로 오고 서울 친구들이 탄 차량은 남으로 달려 약속장소에서 합류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좁은 버스안에 많은 사람이 타고 이동하는 건 걱정스러워 서울에 사는 몇몇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왔던 얼굴엔 잔주름이 졌고 머리엔 서리가 내렸지만 마음은 어린 시절 그대로였다. 만나면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고, 이름 부르며 놀았다. 오랜 세월 못 만나서 생긴 어색함도 스러지고 이성간의 서먹함도 없어진 나이들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모임이었는데 두 해나 모이지 못했으니 그리움만 높게 쌓였던 것이다. 그래도 <5인 이상 모임금지>라는 당국의 조치를 무시할 수가 없어 그리움을 꾹 누르며 참고 참았다. 그렇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 결국 만났다. 그 대신 물 좋고 공기 맑은 산골짝의 인적 없는 농막에서 만났다. 유일한 방역조치는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으면 오지 말라’는 부탁뿐이었다. 물론 일상화 된 마스크 착용은 그날도 필수였다.


그렇게 해서 몸 상태 좋은 70대 초로의 남녀동창들이 모였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들 6명과 편안한 SUV승합차로 내려갔다. 아침밥도 거른 채 서울을 출발해 뻥 뚫린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갔다. 모두들 몸은 초로에 들어섰지만 마음은 소풍가던 날 아침의 초등생 그대로였다. 오가는 추억담 속에 코흘리개들의 모습들이 어른거렸다. 하나같이 해맑고 천진난만한 얼굴들이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세 시간여 만에 친구의 농막에 도착했다. 평소엔 찾는 이 아무도 없는 심산유곡이다.


거기엔 먼저 와있던 대구와 고향의 친구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코로나가 막았던 2년여의 시간 장막도 일시에 걷혔다. 한꺼번에 섞인 30여명의 ‘갱상도’ 사람들이 빚어내는 왁자지껄한 소리들만 맑은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조금 전에 했던 말들이 다시 오갔고 잡은 손도 다시 잡았다. 이름을 잘 못 불러도 허물이 되지 않았다.


한 바탕의 소동이 가라앉고 모임준비에 힘쓴 집행부에 대한 감사의 화환증정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고향 친구들의 정성이 듬뿍 담긴 닭요리와 서울에서 준비해간 쇠고기로 성대한 주연이 베풀어졌다. 가야산 옥계수로 빚은 고향의 막걸리와 시원한 소주, 맥주도 잔치의 흥을 더했다. 모두가 맘껏 먹었고 주량대로 술도 마시며 우정을 다졌다. 경음악 밴드에 맞춘 춤판도 한 바탕 펼쳐졌다. 초여름으로 치닫는 5월말의 맑은 하늘에서 빛나던 해도 신이 난 듯 보였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반가움에 달뜬 노인들을 시원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렇게 2년여 참았던 답답함을 푼 ‘초딩’ 친구들은 재회를 다짐하며 각자의 처소로 흩어져 갔다. 서산으로 기우는 해님과 고향에 사는 동창들의 전송을 받으며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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