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발이 땅에 닿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표현은 이런 날 쓰는 것이리라. 발걸음도 가벼웠지만 몸 또한 가뿐했다. 그 뿐이랴? 기분은 최고로 좋았다. 그 위에 5월 마지막 날 아침의 화사한 햇빛까지 나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는 날 아침의 몸과 마음상태가 바로 이랬을 것이다. 아침8시40분 서울의 남부버스 터미널에서 탑승한 시외버스도 비행기를 탄 기분이었다.
이날은 경향각지에 흩어져 살던 초등학교 동창생들 중 45명이 만나 1박2일의 7순 기념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56년만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산들산들 부는 경쾌한 봄날이었다. 우리들의 7순 기념 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오전11시를 지나면서 고향과 대구, 서울 등지에서 모여 출발했던 친구들이 충북 진천군 산업단지 안 신광M&P 공장에 도착했다. 이 업체는 동창 정상열사장이 운영하는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중견기업이다. 특히 지난1월에는 산학협력을 위해 교육부장관까지 신광M&P 부천본사를 다녀갔을 정도로 튼실한 기업이다. 고향 성주와 대구에 사는 친구들은 대형 전세버스에 함께 타고 도착했다. 매년 한 차례 이상 만났었지만 이날의 모임은 ‘7순 기념여행’이어서 더욱 뜻 깊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먼저 도착했던 친구들이 무리지어 들어오는 친구들과 어우러져 부산하게 반가움을 나누었다. 비록 몸은 초로(初老)가 됐고 머리엔 은발(銀髮)들이 날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완연한 ‘초딩’들이었다. 남녀의 차이도 없었고 사회적 지위의 구별도 없었다. 오직 시골학교 운동장에서 흙먼지 일으키며 뛰놀던 그 철부지 장난꾸러기들만 있었다.
성공한 동창의 공장현황 설명을 듣고 전체 생산 공정들을 둘러보며 친구를 마음껏 칭찬해 주었다. 그야말로 빈주먹만 들고 맨땅에서 불끈 일어선 그가 그렇게 대견해 보일 수가 없었다. 공장견학에 이어 근처의 ‘맛집’에서 술 한 잔 반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구수한 순대국밥에다 한 잔의 술이 어우러진 ‘초딩’들의 멋진 오찬이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했던가? 진천에서 알아주는 ‘맛집’이라는 친구의 말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전세버스에 함께 타고 부근의 보탑사(寶塔寺, 진천읍 연곡리)에 들렸다. 이 절은 1996년에 창건된 비구니 절인데 명물인 3층 목조다보탑(대웅전)은 높이가 42.7m나 된다. 그중 돌로 된 기단부를 제외하고 순수한 목탑의 높이가 32.7m, 사용된 나무의 무게만도 8톤 트럭 150대 분량의 큰 탑이다. 그처럼 규모가 컸지만 조형미 또한 일품이었다. ‘초딩’ 친구들은 아담한 절집과 절 입구의 수백 년 된 느티나무, 3층 목조다보탑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진 절경을 맘껏 즐겼다. 대웅전인 3층 목조탑에도 올라보고 삼삼오오 기념촬영도 했다. 56년 전 그 시절엔 쉽게 어울리지 못했던 남녀 동창들이 이젠 스스럼없이 장난치며 농담도 주고받았다.
보탑사를 나온 일행은 다시 버스로 30여분을 달려 진천의 명물 ‘농다리’로 갔다. 미호천에 놓인 지네모양의 돌다리인 농다리는 길이가 93.6m, 폭은 3.6m에 다리 높이는 1.2m이다. 신라말기나 고려초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순수하게 크고 작은 돌로만 지어졌지만 홍수 때도 유실 되지 않은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 산길을 걷다보면 초평저수지가 나온다. 미호천 상류에 있던 저수지를 1985년에 댐을 새로 쌓아 확장한 농업용 저수지인데 낚시터로 더 유명하다.
호수가운데의 수상 방갈로와 출렁다리, 호수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수많은 관광객과 낚시꾼들을 불러 모우는 관광명소이다. 나이를 잊은 초로의 친구들은 호수둘레로 난 산책로(초롱길)를 걷고 출렁다리를 지나 쉼터에서 아이스크림 잔치도 벌였다. 서쪽 하늘에서 비치는 햇살에 몸을 맡긴 채 날 저무는 호반의 운치에 마음껏 젖어들었다.
다시 농다리를 건너 온 일행은 진천읍내 음식점에서 칠순기념 축하 케이크를 잘랐다. 이어 삼겹살구이에 각종 술을 나누며 진한 동기애를 재확인했다. 수많은 사연들이 오고가는 술잔들에 실려 오갔고 곁들인 식사도 꿀맛이었다. 그렇게 원기를 회복한 친구들은 근처의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한평생 갈고 다듬은 노래와 춤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들이었다. 명창들이 속출했고 일류 댄서들이 무대를 주름잡았다. 누가 이들을 70노인들이라 할 것인가? 목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율동엔 힘이 넘쳤다. 노래방에서 2시간여에 걸쳐 늙지 않았음을 마음껏 과시하고 나온 친구들은 숙소로 들어가 여행첫날을 마감했다. 다만 일부 친구들은 진천읍내를 휘도는 개천가 포장마차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그렇게 조용한 시골 읍의 밤은 깊어갔다.
노인들은 잠이 없다고 했던가? 간밤에 그토록 힘차게 놀았지만 모두들 6시도 채 안 돼 일어났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하천의 산책로를 걸으며 맑은 공기로 간밤의 취기를 말끔히 털어냈다. 그리고 숙소인근 음식점에서 뜨끈한 소고기곰탕으로 속을 풀었다. 이어 한 시간여 거리의 속리산 법주사로 향했다. 잘 정비된 지방 국도와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또 하나의 신나는 노래방이었다. 고성능 음향기기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야 달리는 차량에서 가무행위는 금지된다. 그렇지만 일행은 무리하지 않은 범위에서 음향기기의 힘을 빌려 간밤에 미진했던 여흥을 남김없이 풀었다. 차창 밖의 산과 강, 초목들도 우리들의 흥에 맞춰 덩달아 춤을 추는 듯 했다.
법주사 입구에 도착한 일행은 우리나라의 명품 정이품송(正二品松)앞에서 단체 및 개별 기념촬영을 했다. 600여년의 모진 풍상을 잘 견디어 왔던 멋쟁이 나무였었다. 그러나 몇 년 전 몰아친 강력한 태풍에 아래쪽 큰 가지들이 몇 개가 떨어져 나갔다. 그 후로 본래의 멋진 모습이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낙락장송 큰 나무도 모진 세월의 풍상은 피해갈 수가 없었나 보다. 모습이 형편없이 이지러진 정이품송 앞에서 나도 안타까움을 달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젊음이 물러간 나의 모습이 저 나무와 같겠지?
그리고 일행은 초여름의 녹음이 짙어지는 법주사 경내 숲길을 걷고 큰 가람의 마당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다. 국보급 문화재와 보물급 문화재들을 보면서 선조들의 숨결도 느꼈다. 5층 목탑인 국보55호 팔상전(높이 21.6m)의 위용 앞에선 왜소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탑은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38년(1605년)부터 20년에 걸쳐 사명대사 주도로 복원했다고 한다. 또 팔상전앞 절 마당의 화강암 쌍사자석등(국보5호)은 1300여 년 전 신라 성덕왕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긴 세월동안 두 마리의 돌사자가 중생들의 모든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 숙연해졌다.
법주사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고 밖으로 나온 일행은 법주사 입구 음식점에서 버섯전골을 들면서 이틀에 걸친 여정을 끝냈다. 몇 잔의 반주로 이별의 아쉬움도 달랬다. 함께 버스를 타고 속리산버스터미널 마당에 도착, 고향의 명물인 참외와 수박을 함께 나누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남과 북으로 돌아갔다.
八旬이 되면 다시 ‘1박2일의 만남’을 갖자고 약속한 채로!
* 2019년 5월31일과 6월1일 이틀간 다녀 온 <7순기념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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