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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속 제주 트레킹 ①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1. 4. 1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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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속 제주 트레킹 ①

강풍과 호우도 못 말린 젊은 할배들

 

강한 비바람을 무릅쓰고 트레킹 나선 70대 옛 동료들

제주도엘 다녀왔다. 때맞춰 몰아친 비바람 제대로 맞았다. 올레길도 두 구간 걷고 머체왓숲길 등 아름다운 숲길 세 곳도 걸었다. 절물자연휴양림에선 나무향내에 취했고 한라생태숲에선 멋지게 꾸며진 넓은 수목정원을 구경했다. 출발 전 세웠던 일정들은 대부분 틀어졌지만 그래도 무척 재미있었던 사흘간의 트레킹이었다.

 

물론 집에선 확실하게 짜인 일정표에 따라 떠났었다. 결과는 계획과 도무지 맞지 않게 끝났지만 후회는 전혀 없다. 함께 떠났던 일곱 분 모두에게 그저 즐거운 기억들만 남았을 뿐이다. 그렇게 된 이유를 굳이 밝히자면 예측 못 한 기상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 건가?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 제대로 된 여행이란 말이 있다. 이번 여행은 계획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 됐다. 그랬지만 즐겁게 걷고 좋은 풍광 구경했고 많은 이야기 나누고 맛있게 먹고 마셨다. 그 위에 특급 호텔 버금가는 좋은 숙소에서 편히 쉬었으니 더 바랄 것 없는 여정이었다.

 

얌전히 순서 지키다 첫 비행기 놓쳐

 

코로나19 아랑곳 않고 북새통 이룬 김포공항

개나리와 목련은 졌지만 진달래와 벚꽃 등 온갖 꽃들이 앞 다투며 피는 4월의 첫날 나를 포함해 70대 젊은 할배 7명이 김포공항에서 만났다. 많은 이들이 잠자리에 있을 새벽6시쯤이었다. 비행기는 6시40분 출발이지만 탑승은 6시20분부터 시작이다. 보안검색 수속 게이트엔 네 줄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제주도행 비행기를 여러 번 탔었지만 그 날처럼 붐볐던 적은 기억에 없다. 코로나로 인척의 국제선들은 사람이 없다는데 국내선은 반대였다. 갈 곳이라곤 제주도뿐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들도 착하게 행렬의 뒤에 서서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착하게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결과가 우리 모두를 실망시켰다. 양해를 구하고 악을 쓰며 밀치고 들어가지 못 한 탓이었다. 결국 예약한 비행기는 떠났고 우리들 모두는 한 시간 반가량 늦은 다음 비행기로 출발했다. 충분한 시간여유를 두고 탑승수속 안 한 탓임을 후회했다. 새벽잠 설치고 밤중에 나왔던 보람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여행은 즐거운 법. 제주공항에서 만난 여행사의 버스로 공항에서 가까운 이호동 테우해변으로 이동,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여 올레길17구간을 걸었다. 그리고 12시쯤 해변의 맛집에서 배고픔을 해결했다. 식사 후 오후1시부터 맛집 바로 맞은편에 있는 소사정에서 올레길 걷기를 계속했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바람은 강했지만 그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다. 볼에 닿는 상쾌한 해풍을 벗 삼아 일행은 평탄한 길을 즐겁게 걸었다.

 

마을의 안녕 빌어주는 방사탑 이채로워

 

바다를 향해 들쭉날쭉 벋어나간 현무암 무더기들이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용머리 같기도 하고 검은 자라의 등껍질처럼도 보였다. 에스키모들의 얼음집 이글루를 닮은 돌로 쌓은 방사탑(防邪塔)들도 해안의 운치를 더했다. 거친 자연환경에도 제주도가 평화스런 낙원으로 건재한 이유가 바로 부정과 액운을 막고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빌어 준 이 방사탑들의 덕인 것 같다.

 

올레길 길손을 안내하는 주황과 청색 화살표

외도2동 올레길에서는 수령280년이 넘었다는 거대한 해송이 우리를 반겼다. 오랜 세월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하늘높이 자란 거목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올레길은 물이 거의 없고 화산석만 뒹구는 넓은 건천을 끼고 한없이 이어졌다. 올레길을 알리는 화살표 모양의 표시물과 팔랑이는 리본들이 길손들을 안내해주었다. 리본과 화살모양 표시물은 청색과 주황색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느 곳에선 벚나무 두 그루가 길 양쪽에서 활짝 핀 꽃가지를 맞대 아치를 이루며 길손들을 환영해 주기도 했다.

 

평소엔 돌들만 뒹굴지만 비가 오면 물이 넘쳐 흐르는 건천

중앙선 표시가 없는 포장길이라 오가는 자동차들을 조심하며 걸었다. 그렇게 2시간쯤 걸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거리로는 약4km쯤 걸었단다. 빗방울은 굵어졌고 바람도 강해졌다. 길가 원두막에서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간식들을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비바람은 본격적으로 강해져 우산 하나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아쉬움을 안고 가이드의 안내로 서귀포시에 정해 둔 호텔로 갔다. 목표한 거리를 2km쯤 남기고 첫날 일정을 마쳤다. 그 바람에 각자 배정받은 객실에서 1시간 반쯤 푹 쉬고 함께 저녁식사 하러 나갔다. 그러나 우산을 펼 수도 없을 정도의 강풍과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숙소 바로 앞 돼지고기 전문집으로 달려가 몇 잔의 술을 곁들여 식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객실에 모여 준비해 간 술을 마시며 여행 첫날을 마감했다. 창문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요란했다.

 

계획했던 우도트레킹 뱃길 막혀 못 해

 

제주방언으로 돌밭을 뜻하는 메체왓숲길 입구

아침7시쯤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가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9시에 다시 버스에 올라 둘째 날의 여행을 시작했다. 이날 우리는 우도를 한 바퀴 걸을 계획이었지만 배들의 출항이 금지돼 숲길을 걷기로 했다. 가이드는 우리들을 생소한 이름의 머체왓 숲길로 안내했다. 숲길입구의 주차장에 내리니 비는 그쳐있었다. 제주도 사투리로 ‘머체’는 돌, ‘왓’은 밭이란다. 그러나 숲길엔 이름과 달리 돌은 별로 없었다. 길 시작을 알리는 문을 지나면 널따란 목장이 나온다. 푸른 풀밭은 물론 산책로에까지 말똥들이 군데군데 널려있어 발밑을 조심하며 걸었다.

 

목장을 통과한 길이 끝나는 곳엔 ‘ㄹ’자 모양의 철제 출구가 있었다. 폭은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였고 길이는 내 키 정도였다. 이는 말들이 통과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목장을 나와 임도를 지나면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똑 바로 하늘높이 자란 삼나무나 편백나무도 많았지만 참나무, 동백나무 등 굽은 줄기에 가지 많은 나무들도 울창해 어두컴컴할 정도였다. 숲길은 지형에 맞춰 구불구불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끝없이 이어졌다. 간밤에 내린 비에 젖어 길이 조금 미끄러웠지만 산책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곳곳에 붉은 동백꽃들이 피어 있었고 이름 모를 꽃들도 많았다. 우리들은 수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기념촬영도 했다. 굵은 나무들 사이로 야트막한 돌담들이 남아있어 이곳이 이름처럼 예전엔 돌이 많은 밭이었거나 목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상큼한 공기는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주었다. 비교적 늦게 조성된 탓에 아직은 생소한 것 같다. 그렇게 우리들은 2시간쯤 숲길 2km를 걸어 목장의 철제 출구로 되돌아 왔다. 바로 옆에는 깊진 않아도 꽤 넓은 용암계곡이 있었다. 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기묘한 검은 돌들이 볼만했다.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고 평온을 빌어주는 방사탑

목장을 지나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올랐다. 제주도의 별미 흑돼지고기 전문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고기나 반찬, 채소가 무한정 제공되는 맛집이었다. 막걸리도 테이블마다 한 주전자가 무료로 제공됐다. 아침을 라면이나 간편식으로 해결한 탓에 술 한 잔 곁들인 점심이 일미였다. 나와 함께 앉은 일행은 막걸리를 옆 테이블 일행에게 주고 소주를 사서 마셨다. 그 대신 맛있는 고기를 더 갖다 먹었다. 이렇게 둘째 날의 오전 일정을 마쳤다. < ②에서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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