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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맑은 아침

단상

by 솔 뫼 2021. 6. 1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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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아침이 사라졌다


올해 봄엔 맑은 하늘에서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본 적이 몇 번 없다. 특히 5월 이후엔 거의 매일 비 오거나 잔뜩 흐렸고, 그도 아니면 안개라도 심하게 끼었던 아침의 연속이었다. 아파트 건물들에 가려 일출 광경은 못 보지만 해 뜰 무렵의 붉은 하늘마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침 운동을 거의 매일 했기에 나는 올 봄의 아침날씨를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다. 나는 지난달25일 4년 동안 살았던 동네를 떠나 야트막한 동산들이 많은 이 동네로 이사했다. 먼저 살던 동네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공원이 있어 걷고 달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또 울창한 수목들과 아담하고 예쁜 연못, 각종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 화단도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평평한 도심의 공원이었다.

이 동네는 반대로 그렇게 넓은 공원은 없지만 서울숲과 한강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동산에 조성된 여러 공원들이 이어진다. 동산의 높이도 좀 높은 곳은 해발170m쯤 된다. 그래서 한강이나 서울도심, 그리고 북한산, 인왕산, 아차산, 대모산 등이 가까이 보인다. 좀 멀리 떨어진 청계산, 남한산성도 잘 보인다.


청명한 날 아침이면 좌우와 앞뒤로 펼쳐지는 경치나 조망이 정말 좋다. 특히 동쪽에서 비스듬히 비치는 불그레한 햇살을 받은 경치는 절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맑은 날을 더욱 기다리는 편이다. 그런데 올해 봄에는 맑은 아침하늘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이사 온 후 딱 이틀만 맑았었다.


나는 이 동산들과 공원들을 아침마다 걷거나 달린다. 또 그 길엔 멋진 경치 못 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우거진 숲은 차치하더라도 길섶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이 나는 좋다. 붉거나 연분홍 백합꽃들이 환하게 반겨주고 풀 속에서 수줍은 듯 고개 내민 새빨간 화초용 양귀비들도 웃어준다. 게다가 마주치면 웃음으로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더 좋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해서 기다렸던 완전한 ‘맑은 아침’이 사흘 전에 찾아왔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해발170m'라고 표시된 봉우리에 있는 정자에 올라 넋 놓고 멋진 아침을 즐겼다. 구름 한 점 없는 서울 하늘, 날아갈 듯 시원하게 부는 바람, 정자에서 만난 사람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어우러진 아침이었다. 북한산과 인왕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고 햇살에 반사되는 한강의 잔물결까지도 보일 것 같았다. 내려다보이는 비탈에 핀 하얀 밤꽃들도 유난히 희게 보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이틀간 잔뜩 흐리더니 어제 아침엔 아예 비가 내렸다. 그리고 나흘째인 오늘 아침엔 비는 그쪘지만 구름이 또 하늘을 가려버렸다. 오랜만에 찾아왔던 맑은 아침은 이렇게 사라졌다. 가랑비 내린 어제 아침, 잔뜩 구름이 낀 오늘 아침 창밖을 보며 나흘 전의 맑았던 아침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그 맑은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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