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속을 거닐다
어디서 살든 정들면 거기가 고향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고향을 ‘가장 살기 편하고 정이 가는 곳’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또한 이 말은 정붙이고 오래 살았거나 오래 살아 정든 곳이 좋다는 말도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사가 잦은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이 말은 매우 가슴에 닿을 것이다.
최근에 이사를 했다. 서울 안에서의 이사였지만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같은 도시이긴 하지만 서울은 세계적 거대도시인지라 주변 환경이나 생활여건은 동네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다른 지방으로 이사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으로 대별되는 차이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전국의 어느 곳이 됐든 이사를 하고나면 얼마동안 불편하거나 생소함을 겪지 않을 수가 없다. 여러 가지 여건들이 달라졌기에 어쩔 수가 없다. 이런 불편함에 빨리 적응할수록 살기에 편해지고 재미도 빨리 느낄 것이다. 새 동네의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을 사귄다거나 주변 편의시설 활용 등 적응하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기보다 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더 찾는 편이다. 홀로 걷거나 산에 오르고,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잡문을 써서 내 블로그에 올린다. 가끔 수필전문 잡지에 기고도 한다. 물론 친구나 지인들과의 모임도 가능하면 적극 참여한다. 또 친구들과 여행을 하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갖기도 하지만 이런 건 통상적이 아니다.
내가 가장 즐기는 방법은 조깅이나 산책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를 많이 찾아내 활용하는 것이다. 아침운동을 즐기는 나는 인공적 시설보다 집주변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한다. 요즘 건축되는 아파트들엔 최신식 스포츠 시설과 장비가 다양하게 갖추어진다. 그렇지만 나는 밀폐된 실내장소에서 기계나 기구를 이용해 ‘제자리 뛰기’식으로 운동하기는 싫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 온 나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결혼 후에만도 열 차례나 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휴일밖에 쉴 수 없어 주변 환경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렇지만 은퇴 후에는 달랐다. 갑자기 생긴 여유로운 시간에 나는 걷기나 조깅, 등산을 즐겼다. 특히 걷기나 조깅은 거의 매일 집주변 장소에서 즐겼다. 한동안은 마라톤에 빠져 각종 대회에도 많이 출전했다. 그렇게 즐기다보니 이사를 가면 가능한 한 빨리 주변의 환경을 둘러보며 걷고 달리고 산책하거나 산행할 곳을 먼저 찾는다.
지난달까지 살았던 동네에선 근처의 보라매공원, 관악산, 여의도 한강둔치가 나의 장소였다. 간혹 안양천에도 갔다. 더 오래전에 살았던 동네에선 대모산과 양재천 길을 걷고 달리고 오르내렸다. 이처럼 이사 다닐 때마다 내가 정을 붙였던 길과 둔치, 산은 달라졌다. 같은 길이나 산이라도 즐길 수 있는 여건이나 시간에 맞춰 다르게 선택했다.
이번에 이사 온 동네는 4년 전까지 내가 살았던 곳이라 더 정겨운 곳이다. 내가 매일 걷고 달렸던 꽤 넓은 근린공원이나 서울숲-남산길이 있다. 그밖에 야트막한 동산들도 있다. 그 4년 사이 수목들은 더 무성해졌고 길은 잘 정비됐으며 없던 편의시설들이 많이 설치돼 있었다. 약1km만 걸어가면 중랑천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개나리동산아래 한강에 닿는다. 봄철이면 온통 개나리꽃으로 덮이는 산이다. 중랑천 나무다리를 넘으면 바로 서울숲이다.
나는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이 길들을 걷고 달린다. 남산으로 이어지는 금호산, 매봉산 길엔 전망 좋은 팔각정도 있다. 남쪽엔 도도히 흐르는 한강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서울시가지와 그 너머 북한산 줄기가 손짓한다. 서울숲으로 가다 중랑천 둔치 길을 거슬러 오르면 살곶이 다리를 지나 청계천으로 이어진다. 자연은 이용하는 자에게 무한한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준다고 했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수치로 환산할 수도 없다. 나는 다시 돌아온 이 동네에서 그 행복을 맘껏 누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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