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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산의 하동(河童)들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1. 7. 1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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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계곡에서 그린 우정의 수채화


老軀속에 ‘젊은 마음’을 감춘 노인들이 모여서 철부지 河童들처럼 벗고 놀았다. 시원한 계곡물이 ‘좋아요, 예뻐요’를 반복하며 돌돌돌 흘러가는 양평군 중미산 자락 숲속이었다. 물론 옷은 안 벗고 발만 벗었지만 말이다. 삶의 황금기라는 젊음을 다 보내고 모인 70대 초반의 대학 동기동창 남녀8명이 빚어낸 한 폭의 멋진 수채화 같은 만남이었다. 길고도 거칠었던 세파를 이겨내고 모여 앉은 젊은 마음들이기에 반가움과 즐거움만 꽉 찼던 시간이었다.


장마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16일 오전11시.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탄 동창생 일곱이 서울지하철2호선 삼성역을 출발, 서울 근교의 중미산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앞서 출발한 차에 탄 넷은 양평군 서종면 도장2리에 있는 아담한 농촌주택에 들려 준비해간 음식들을 냉장고 등에 보관 후 휴양림 주차장으로 갔다. 손수 운전을 맡은 동창이 마련한 아담하고 깨끗한 집이었다. 그는 농막이라 했지만 우리는 별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주차장으로 먼저 와서 기다리던 후발차량의 친구들과 다시 만난 일행은 한적한 숲속 포장도로를 따라 20분쯤 걸어 올라가 중미산삼거리 휴게소의 음식점으로 갔다. 허름한 포장마차를 닮은 음식점이었지만 중미산과 유명산을 찾는 산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맛집’이란다.


숲길을 잠깐 걸었지만 복중의 한낮 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음식점의 천막 그늘에 앉으니 불어오는 산바람이 순식간에 더위를 식혀주었다. 부추전과 감자전에 곁들여 마신 이 고장 명주 지평막걸리 한 잔과 얼음처럼 찬 탄산음료가 남은 더위를 잊게 했다. 그 다음에 나온 쫀쫀하고도 맛있는 열무국수는 자타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나오느라 아침식사가 부실했던 일행들의 시장기도 함께 해결해 주었다.


배불리 먹은 일행은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 주차장 맞은편 숲속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걸었다. 같은 숲속 길이었지만 흙길은 무척 시원했다. 각종 풀들이 지면을 덮고 있어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발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흙의 촉감이 딱딱한 포장도로보다 걷기에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군데군데 예쁜 풀꽃들이 피어있었고 잘 익은 매실을 닮은 이름 모를 열매들도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비교적 평탄한 숲길이었지만 일행 중 한 두 사람이 다리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긴 했다. 그랬지만 모두가 젊은 마음들이었기에 서로 보조와 속도를 맞춰 추억담을 풀어내며 함께 걸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소풍 나온 초등학생들의 심정으로 걸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어지는 추억속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옛 추억들을 모아 즐겁게 걷다보니 새로운 추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70대 초반의 ‘젊은 할배-할매’답게 마음은 어느새 꿈 많던 대학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렇게 걸어가다 임도를 벗어나 약간 비탈진 숲속 오솔길로 들어갔다. 입구의 길바닥은 물이 넘쳐 신발이 젖을 정도였지만 미끄럽거나 발이 빠지지는 않았다. 오솔길 옆으로는 좁은 계곡이 있어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우리들은 허리까지 자란 풀숲을 헤치며 오솔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 널찍한 공터에 도착했다. 공터 옆에는 앉아서 놀기에 알맞은 바위들이 모여 있었고 그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의 폭도 상당히 넓어 일행들이 함께 발 담그고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장소는 별장의 주인이 미리 찾아놓은 곳이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도 모르게 모두들 양말 벗고 흐르는 계곡물로 들어갔다. 세수도 하고 물장구도 쳤다. 비뚤게 있는 커다란 돌멩이는 옮겨서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새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정말 시원하고 좋았다. 그렇지만 그 기분을 정확하게 묘사할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들 아이들처럼 좋아라고 떠들고 놀았다. 특히 홍일점 동창의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학창시절의 청순하고 앳된 모습을 다시 엿볼 수가 있었다. 지극한 즐거움은 세월이 몸에 덧씌워 놓은 더께마저 사라지게 하나보다.


그렇게 즐겁게 한 시간 반쯤 놀다 주차장으로 나와 친구의 별장 같은 농가주택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서울에서 오전 일을 마치고 혼자 찾아온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동창생 여덟 명이 모이게 됐던 것. 늦은 오후의 열기가 심했지만 냉방기 강하게 켜놓고 널찍한 거실에서 차 마시며 동기동창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우정을 다졌다. 그러는 사이 파랬던 하늘엔 짙은 구름이 덮였고 산 너머 멀지 않은 곳에선 한 줄기 소나기가 퍼붓고 있는 것 같았다. 그쪽에서 불어오는 탓인지 더웠던 바람도 시원하게 바뀌어 있었다.


일행은 앞마당으로 나와 잔디밭에 설치된 널찍한 나무 데크 위의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솜씨 좋은 남자동창과 섬섬옥수 홍일점 동창이 빠른 속도로 깎아주는 참외와 복숭아로 저녁식사에 앞선 달콤한 맛의 잔치를 즐겼다. 저녁의 주 메뉴는 야채와 양념으로 버무린 ‘오리고기 주물럭’이었다. 별장 주인이 인근의 이름난 맛집에서 특별히 주문해 마련한 것이란다.


네 사람씩 나뉘어 앉아 플라이 팬에서 구어 낸 오리고기를 밭에서 갓 뜯어 온 채소로 쌈 싸서 실컷 먹었다. 그 위에 한잔의 막걸리 반주도 곁들였다. 고기를 너무 많이 준비해 결국 일부를 남겨야했다. 그야말로 맛있는 음식을 포식했다. 식사를 마친 친구들은 서로 팔을 걷어 부치고 달려들어 순식간에 설거지까지 마쳤다.


長長夏日 여름해도 어느덧 서산으로 넘어갔다. 땅거미가 내리는 산촌에서 후식으로 마련한 차를 마시며 식사 후의 포만감이 주는 푸근함과 평온함을 즐겼다. 그리고 일행의 절반인 넷은 다음날의 일정 때문에 아쉬움을 안은 채 밤길을 달려 서울로 떠났다. 남은 넷은 다시 와인을 나누어 마시며 밤이 이슥하도록 못 다한 추억들을 불러냈다. 이 과정에서 이날 참석은 못 했지만 추억담 속에 나온 국내외의 친구들 몇몇을 전화로 불러 속칭 ‘비대면’ 소풍을 함께 즐기다 잠이 들었다.


산촌의 맑은 새벽공기를 마시며 일찍 잠을 깬 별장의 네 동창들은 마음껏 여유를 부리며 아침 시간을 즐기고 가볍게 식사했다. 그리고 못 다한 이야기들을 더 하거나, 다 피우지 못한 게으름을 마저 피우며 시간을 즐기다 귀경 길에 올랐다. 도중에 양평군의 유명한 맛집 옥천냉면집에서 냉면과 완자, 빈대떡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음식점 바로 옆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젊은 여자 혼자 일하는 그 카페는 시골다방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정감이 갔다.


끝으로 이번 중미산 소풍에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별장주인님께 한없는 감사를 보낸다. 또 별장주인과 함께 운전을 분담한 동기회장님, 마지막으로 피날레 커피를 제공한 바다 건너온 친구에게도 감사드린다. 이번에 함께 했든, 못했든 친구들아 자주 만나서 즐거운 추억들을 보태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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