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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삼옥동굴 탐사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1. 9. 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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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어둠속에서 나를 보았습니다!

<  다음 글은 영월군 동강가에 있는 미개방 천연동굴 속 약1.6km(왕복)를 탐사한 스케치 입니다.  관련 사진은 별도 기사에 실었습니다. >

성경 창세기 1장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란 귀절이
있고 3절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는 귀절도 있다.
그러나 그곳엔 어떤 빛도, 어떤 소리도 없었다. 눈을 뜨거나 감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깊은 동굴속에서 태고의 어둠을 만나---

눈을 감지 않아도 옛일을 회상하면 그때의 장면들이 눈감은 것처럼 떠오르곤 했다.
천지창조 이후로 한점의 불빛이나 소리가 닿지 않은 곳에서 나는 20여분을 홀로 있었다.
아직도 창세기 1장2절에 머물러 있는 그 곳은 깊은 땅속 천연동굴 안이었다.

2011년6월4일 오후1시부터 오후6시30분까지 나는 강원도영월군 봉래산 삼옥굴 속에 있었다.
봉래산 주변은 심산유곡인데다 물 맑은 동강이 휘돌아 나가는 비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절경을 마다하고 두더지도 들어가기 어려운 깊은 땅속을 헤매고 있었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의 모험

그날 그 깊은 천연동굴 속에서 온몸으로 체험한 일은 내 생애 최대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그 동굴 속을 경험하게 된 것은 강원대학교 동굴탐사동아리의 초청으로 가능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는데 내가 바로 그 '하룻강아지'였기 때문이다.

몇년 전에 내가 몸담았던 작은 회사의 임원으로 있는 50세 전후의 후배가 그 동아리 멤버였다.
평소 그에게 들은 동굴속의 비경과 탐사에 얽힌 히로애락이 나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그에게 부탁해 겁 없이 따라 나선 것이 이번의 동굴탐사여행이었다.

그 후배의 차에 편승해 영월역에 도착, 일행 6명과 합류해 탐사의 길에 올랐다.
올갱이 국으로 식사 후 동강을 끼고 20여분을 달려 봉래산에 도착하니 낮12시30분.
산 아래에서 우리는 맨땅을 기어 다닐 수 있는 특수복과 헬멧, 헤드랜턴으로 무장했다.
가파른 산길을 자일까지 타면서 30분쯤 더 올라가 동굴입구에 닿았다.

영월군청에 미리 입굴 허가를 신청, 받아온 열쇠로 동굴입구의 철문을 열고 굴속으로
기어들었다. 반달 모양의 입구부터 허리를 90도 이상 바짝 숙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빛이라곤 헬멧에 달린 랜턴 빛이 전부

지금까지 내 머리속의 동굴풍경은 제주도 만장굴, 영월 고씨동굴처럼 개방된 굴 뿐이었다.
안전시설에 의지해 천장에 달린 종유석이나 바닥에 솟은 석순들을 감상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 삼옥굴 탐방은 전혀 달랐다. 아무런 인공시설물이 없는 자연 상태 그대로였다.
철문 안쪽을 기어들자마자 깜깜한 암흑의 세계가 펼쳐졌다.
빛이라곤 대원들의 헬멧에 달린 LED 헤드랜턴의 파리한 불빛이 전부였다.

앞 사람을 따라 허리를 완전히 구부리고 기다시피 20여m 들어가자 굴이 갑자기 좁아졌다.
좁다란 바위 틈새를 통과하기 위해 얼굴을 땅에 대듯 낮춘 자세로 발끝으로 몸을 밀며
벌레가 기어가는 자세로 겨우 겨우 움직여야만 했다. 벌써 땀이 비 오듯 한다.

발밑이 안 보이는 좁은 긴 침니에 아연실색

겨우 빠져나가니 조금 넓은 통로가 랜턴 불빛 저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것도 잠깐. 이번엔 아래가 보이지 않는 엄청난 바위틈(침니)이 버티고 있었다.
틈새 폭이 좁게는 60cm, 넓은 곳은 1.5m쯤 돼보였다. 겁이 덜컥 나고 다리의 힘이 빠진다.
그래도 이 틈바구니를 지나가야 다음 길이 펼쳐진다.

팀원중 선배인 젊은 리더의 설명을 들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진퇴양난.
우선 약간 경사진 두개의 바위벽 중 낮은 곳에 등을 바짝 붙인 채 눕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두발은 건너편 바위벽을 힘껏 미는 자세로 붙은 다음 양손을 이용해로 엉덩이를
조금씩 전진시킨다. 그리고 그에 맞게 발도 한발씩 따라 옮기는 위험천만한 이동이다.

엉덩이와 두발에 의지 천길 침니 30-40m 통과

그래도 지나가야 할 침니의 길이는 약30-40m쯤 된다고 다른 동료가 알려준다.
실수로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보이지 않는 바닥엔 무엇이 있을까?
처음엔 온갖 생각이 떠올랐지만 막상 침니에 달라붙은 후로는 아무 생각도 없어졌다.

앞에서 가르치며 끌어주고 뒷사람은 렌턴 빛으로 발 디딜 곳을 비추어 준다.
그러나 결국은 내가 움직이고 밀어서 나가야만 전체가 움직일 수가 있어 포기도 못한다.
동료들은 나더러 겁내지 말고 발과 손만 사용해 세군데만 꼭 짚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겁에 질려 바위에 매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간 줄 모르는데 그 악몽의 틈바구니를 통과하니 이번엔 낭떠러지다.
벌벌 떨면서 바위에 온몸을 의지해 사투를 벌인 끝에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저절로 주저앉고
말았다. 두꺼운 특수복을 입었지만 온몸이 긁히고 쑤시며 땀 때문에 눈도 못 뜰 판이다.

칼처럼 모로 누워 구불구불한 바위틈 지나

다시 넓어진 동굴 속을 이번엔 머리만 약간 수그린 채 한참을 걸어가니 사방이 막혀버린다.
자세히 보니 좁게 벌어진 틈이 보였는데 높이가 겨우 60cm가 될까 말까해 보였다.
대원들을 따라 몸을 옆으로 칼처럼 세워 팔부터 틈새에 넣은 후 발끝으로 밀기 시작했다.
조금 민 후 손으로 좌우 상하의 바위벽을 잡고 몸을 당기는 식으로 앞으로 진행했다.
그나마 곧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건 정말 구절양장. 제멋대로 구불구불하니 죽을 맛.
급기야 가운데서 몸이 끼어 나갈수도, 물러설수도 없어 정말 무지하게 고생도 했다

가다가 지쳐서 낮은 쪽에 있는 왼쪽 팔에 머리대고 있으니 그대로 자고 싶어진다.
천신만고 끝에 긴 토끼 굴을 빠져나간 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금 넓어진 동굴의
바닥에 각자 편한 자세로 누워버렸다. 모두 숨이 턱에 닿고 옷과 얼굴은 흙먼지 범벅이다.

그때 나는 신천지를 보았다. 랜턴 빛에 비친 동굴 벽이 그처럼 아름다운 줄을 몰랐다.
벽을 가득 매운 채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형색색의 석회 형성물들이 작은 산호처럼 보였다.
또 각종 굵기의 종유석들의 부드러운 굴곡미, 곡선미와 아름다운 색상에 감탄했다.
대원들은 남들이 못 보는 이런 태고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기에 어려움을 무릅쓴다고 했다.

석회동굴 벽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만 연발

한참을 나아가니 이번엔 무릎까지 차는 물이 있는 굴이 나타났다.
다른 대원들은 동굴 벽 양쪽에 발을 밀착한 채 평지 걷듯 했지만 나는 물속을 걸어야 했다.
그 다음엔 높이가 내 키 3배쯤 되는 구멍을 뚫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밑에선 밀고 위에 올라간 사람은 손을 잡고 당기는 등 온갖 어려움이 우리를 압도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낙오 없이 침니와 낭떠러지, 낮고 좁은 굴을 통과했다.

어떤 절벽과 낭떠러지에서는 자일을 설치하고 겨우 오르내리기도 했다. 어떤 곳에서는
바닥에 바짝 엎드리거나 누워 발꿈치와 엉덩이, 양팔로만 움직이는 오체투지 그 자체였다.
어떤 유격훈련도 이럴 순 없겠다. 나는 일행이 받쳐주는 발이나 그들의 어깨를
딛고 오르내린 곳도 부지기 수다. 세상에 나서 가장 고생한 하루였다.

이날 우리 일행이 통과한 총 길이는 약 800m. 왕복으로 1.6km나 된다고 한다.
그중 나는 마지막 약100m의 탐사는 포기해야만 했다. 깊고 험한 낭떠러지를
통과해야 하는 곳이란다. 내 실력으로는 너무 위험한 곳 같아 도저히 자신없어 어둠속애 홀로 남았다.

홀로남아 랜턴 끄고 태고의 어둠과 대면

일행 7명이 내려간 후 그들의 랜턴 불빛과 소리마저 끊어지자 나는 내 랜턴을 껐다.
그러자 태고의 어둠이 나를 반겼다. 천지창조 이후 계속 되어 온 그 태고의 어둠 속에
완전히 나 홀로 남겨진 것이다. 인공의 빛 외엔 비친 빛이 없는 곳에.

그곳엔 어떤 움직임도 없었고 미세한 소리도 한점 빛도 없는 암흑과 고요의 세상이었다.
살아온 지난날이 일순간에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굳이 눈을 감을 필요도 없었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오직 궁둥이에 닿은 동굴바닥의 딱딱한 질감뿐이었다.
나는 기도했다. 무작정. 그러나 지금은 그 내용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몸에 한기가 살짝 느껴질 때 쯤 나는 랜턴을 켜고 가져간 초콜릿 한 개를 꺼내먹었다.
20여분이 지났을 때쯤 먼 곳에서 약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곧 이어 대원들의 희미한
랜턴 불빛이 동굴 저 아래쪽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들어갔고, 그렇게 동굴 밖으로 나왔다. 오후6시반의 해가 산머리에 있었다.
밖에서 보니 온몸이 상처와 멍자국이고 성한데라곤 헬멧속의 머리와 얼굴뿐이었다.
그러나 발아래로 흐르는 동강의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이 피로를 한순간에 씻어 주었다.

<후기> 이 글은 2011년6월 다녀 온 영월 삼옥동굴 탐사 기사입니다. 사진은 별도의 기사 https://ih0717.tistory.com/80 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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