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가정의 달, 어버이 날도 함께 있는 달!
짙은 향기타고 아련히 떠 오르는 부모님 모습
따스하고 맑던 봄날씨가 어린이 날 연휴기간엔 많은 심술을 부렸지요? 급기야 어린이 날엔 왼종일 비가 심하게 쏟아져 동심을 울려 놓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지방에 따라선 여름날 장대비처럼 퍼붓기까지 했었답니다. 그 바람에 연휴를 맞아 아이들과 함께 떠난 가족여행을 망쳐놓기도 했고요. 그렇게 심술을 부렸던 날씨가 연휴 마지막 날 낮부터 개이더니 연휴가 끝난 월요일엔 거짓말처럼 활짝 개었습니다. 마치 언제 비바람이 몰아쳤느냐는 듯 청명한 날이 펼쳐졌습니다. 하늘은 맑다 못 해 손이 닿으면 시릴만치 새파랬습니다. 그 맑고 파란 하늘에 맞춰 바람도 살라살랑 상쾌하게 불었습니다.
그 비 개인 월요일 아침 운동길에 하얗게 핀 아까시아 꽃을 만났습니다. 야트막한 한강가 동산의 한쪽 비탈에 꽉 들어찬 아까시아 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운 아침이었습니다. 꽃들은 아침 햇살에 비쳐 더욱 하얗게 빛났지요. 그 꽃들이 새파란 하늘과 어울려 정말 하얀 세상을 펼쳐 놓았습니다. 그리고 살랑거리는 아침 바람에 강한 향기를 사방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상쾌한 아까시아 향이 5월의 파란 하늘로 퍼지는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까시아 향기에서 부모님의 따스했던 체취까지 느꼈습니다. 그리고 며칠도 안 돼 이번엔 각종 색깔의 장미꽃들까지 잇따라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장미꽃들과 함께 새하얀 찔레꽃도 피었습니다. 향기로 말할라 치면 장미꽃이나 찔레꽃도 빼놓을 순 없겠지요?
아까시아, 장미, 찔레 꽃이 두서 없이 피어나는 계절이 되면 저는 농사일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실 날이 없었던 부모님 생각이 간절합니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지려는 60여년 전의 추억들이지만 농사일로 고생하셨던 부모님 모습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직도 생생한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이들 세 종류의 꽃은 당시엔 지금보다 조금 늦은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누렇게 익은 보리를 초여름 땡볕 아래서 거두어 들일 때면 그 고통이 이루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보리 이삭에 붙어있던 갈크러운 수염들이 땀에 젖은 온 몸에 달라붙어 가려움이 말 할 수 없이 심해 괴로왔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곧 닥쳐올 장마 때문에 보리타작은 늦출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힘들게 보리 수확을 끝내기가 바쁘게 보리 베어 낸 논을 갈아엎어 모내기 준비를 해야했습니다. 소 등에 쟁기를 달아매어 논이나 밭을 갈아엎는 쟁기질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일의 어려움을 모릅니다. 끌어당기는 소의 힘을 이용하지만 쟁기날의 각도에 따라 흙이 패이는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재래식 쟁기를 체력으로 반쯤 들다시피 하며 넓고 넓은 논을 갈아야 했으니까요. 초여름 더위를 무릅쓴 채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과의 험난한 싸움이었지요.
그러다 새참을 이고 나오는 어머님을 보면 쟁기질을 멈추고 달려와 머리에 이고 있던 커다란 채반을 받아 논두렁에 내려놓으시던 아버지의 흙을 뒤집어 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조무래기였던 저와 여동생도 양손에 묵직한 주전자를 들고 어머님을 따라 가곤 했지요. 한 주전자는 물, 다른 주전자엔 막걸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논두렁의 공터엔 높게 자란 아까시아 나무가 하얀 꽃을 잔뜩 피우고 있었지요. 아까시아 그늘에 앉아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새참을 드시고 농주 마시던 아버님 모습! 그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 보시던 어머님!
그 당시 농촌들판 주변의 논두렁이나 산 아래엔 아까시아 나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리고 들판 가운데를 흘러가던 넓지 않은 개울의 양쪽 둑엔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강한 향기를 풍겼지요. 우리 조무래기들은 가시에 찔리지 않게 조심하며 찔레나무 새순들을 꺾어 씹어서 단물을 빨아 먹으며 놀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새참을 다 드시고나면 그릇들을 챙겨 집으로 가서 다시 점심식사 준비를 하셨지요. 우리들은 그렇게 들판에 나와 다른 동무들과 어울려 아까시아 꽃을 따먹고 찔레나무 새순을 꺾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얗게 피어있는 아까시아꽃이나 찔레꽃을 보면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힘든 농사일로 땀에 쩔어 지내시던 부모님의 체취가 떠 오릅니다. 저에겐 그 냄새가 다른 꽃들의 향기 못 지 않은 향취(香臭)로 다가 옵니다. 올해도 그 때처럼 하얀 꽃들은 변함 없이 피었지만 꽃들 근처에 부모님은 계시지 않네요. 다만 눈물겹게 돌아가고 싶은 추억속의 그 시절 들판에서는 보입니다.
< 2023년 5월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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