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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남자 동창들의 신나는 수다

단상

by 솔 뫼 2023. 5. 1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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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맘껏 걷고 웃고 떠들어
 


참 즐거운 만남이었고 정말로 신나는 걸음이었다. 굳이 예를 갖출 일도 없었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었다. 두서없이 주고받는 말들이지만 소란스럽지 않았고 주어와 술어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도 이해 안 되는 말이 없었다. 부담 없는 사이, 막역한 관계, 숨기거나 자랑할 것도 없이 서로 잘 아는 동창생들이 만났기 때문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따가웠던 5월17일 오전10시 서울 장충단공원 입구에서 대학동기생 6명이 만났다. 지나 간 시절 여대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며 고개 빳빳이 세우고 어깨 힘주며 다녔던 신촌의 명문대 인기학과 출신들이다. 이날 이들은 서울 남산 북측 순환도로를 따라 남대문시장까지 걷기로 했다. 이 길은 우거진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터널처럼 숲길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늘이 짙어 시원하고 경사 또한 완만해 산책하기 아주 좋다.
 


일행은 정원수들이 잘 가꾸어진 장충공원을 지나 남산 순환도로가 시작되는 국립극장 앞까지 갔다. 2차선으로 포장된 길은 들머리에서 약간 경사가 있지만 조금만 오르면 두 갈래로 갈라진다. 북측 순환도로는 오른쪽 길이다. 길은 거기서부터 평탄해지는 데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다. 70을 넘긴 초로의 친구들은 북측 길을 따라 걸었다. 자동차가 없는 널찍한 길을 친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었다. 좌우의 나무들은 벌써 신록을 지나 한여름의 녹음을 방불케 했다. 간간이 아카시아 꽃도 보였지만 벌써 대부분 떨어진 상태여서 기대했던 강한 향기는 느낄 수가 없어 아쉬웠다.
 


국립극장 뒤쪽엔 애국가 가사에도 나오는 남산의 상징 소나무 생태가 복원돼 관리되는 곳이 있다. 몇 년 전까지는 출입이 통제됐지만 요즘은 월요일만 출입금지다. 그 곳엔 아름드리 소나무들도 몇 그루 있는데다 약 400m의 흙길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 소나무 숲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일행은 도중에 지붕이 있는 쉼터에서 짙게 풍기는 향긋한 솔향기 맡으며 준비해 간 과자와 귀한 가양주를 한 잔씩 나누며 얘기꽃을 피웠다. 주제도 다양했고 시제(詩制)도 들쭉날쭉 했지만 모든 얘기의 결론은 오늘 이 순간만은 즐겁다는 데서 멈췄다.
 


격의 없는 여섯 동기생들이 빚어내는 즐거움이 시간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무성한 나무들이 만드는 짙은 그늘 길은 구불구불 3.5km나 계속된다.  도중에 만난 묘령의 외국 여자에게 일행의 기념촬영도 부탁했다. 하늘 높이 솟은 서울N타워를 보며 하늘을 찌를 듯 높았던 옛 시절의 기상과 푸른 꿈도 회상했다. 서울 시가지 너머에서 웅자를 뽐내는 북한산과 인왕산, 도봉산과 수락산, 불암산 줄기엔 감탄사도 아끼지 않았다.


젊은 할아버지 여섯은 그렇게 얘기하고 웃으며 안중근의사 동상이 서있는 광장에  도착, 거기에 먼저 와서 기다리던 동창생 한명과도 만났다. 일본이 우리를 괴롭혔던 시절 조선신궁이 있던 곳과 훼손돼 없어진 한양도성 발굴 현장들을 둘러보며 작금 벌어지는 각종의 걱정스런 사태들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입심 하나야 누구에게도 질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마침 그 곳에서 만난 외국인 부부 관광객과 즐겁게 대화하고 헤어질 땐 악수까지 나누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75세의 남편과 60대 후반의 부인은 약3주일 동안 머물며 부산, 제주 등지를 구경하겠다고 했다. 노후를 여유롭게 즐기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과 헤어진 후 남대문 시장의 저렴하고 서민적인 생선회집으로 가려했지만 준비한 식재료가 다 떨어졌단다. 그래서 일행 중 한 친구가 아는 힐튼호텔 근처의 한정식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 집은 깔끔하고 음식도 정갈해 막걸리 반주해서 정말 즐겁고, 맛있게 식사했다. 식사비는 음식점을 소개한 친구가 잽싸게 계산했다. 이 친구는 올해 만난 동기생 모임 때마다 계산을 하는 바람에 일행들에게 높은 원성(?)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다음 모임부터는 미리 회비를 걷고 모자라는 만큼만 교대로 부담키로 했다. SKY학교 출신답게 정말 멋지고 깔끔한 노인들  아닌가? 맘껏 수다 떨고 기분좋게 취한 일행은 남은 삶의 콘셉을 <여유와 즐거움>으로 정하고 다음달 모임을 기약하며 초여름 한낮의 따가운 햇살속으로 헤어졌다.


                       <  2023년5월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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