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열풍도 지나가고 그 뒷얘기들만 무성합니다. 어떤 이들에겐 환호작약의 시간이 계속될 것이고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겐 통한의 시간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예부터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게 인간사’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웃는 사람 있으면 우는 사람도 있겠지요? 여러분의 시간은 어느 쪽인가요?
이제 올해 봄도 절반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겨울 끝자락의 찬바람을 맞으며 봄소식을 일찍 전했던 산수유 영춘화 개나리 등은 자취도 없어졌고 온 나라를 꽃 잔치로 내몰았던 벚꽃도 이젠 거의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들이 사라져 간 뒤를 연분홍 철쭉꽃과 새하얀 이팝과 조팝 꽃이 따라왔습니다. 또 강가의 넓은 둔치나 공원의 화단과 길가엔 여러 가지 색깔의 튜립꽃들이 현란한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심한 황사와 미세먼지가 수시로 덮쳐 봄 기분을 망쳐놓기 일쑤이지만 아름다운 봄꽃들의 잔치는 여전히 계속됩니다.
그렇지만 그 꽃동산에 사는 사람들은 온갖 감언이설들을 쏟아내고, 기상천외한 일들을 벌이면서 다투거나 뽐내고, 거짓과 과장된 행동들로 상대방을 헐뜯느라 영일이 없습니다. 그들에겐 아름다운 꽃들도 보이지 않고 꽃이 주는 즐거움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 그뿐만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도 그들에게 휩쓸려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못 느끼거나 빼앗기지는 않는 걸까요? 어쨌든 각종 아름다운 봄꽃들의 유혹은 끝이 없지만 솔찍히 말해 기분이 상쾌하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봄날은 가고 꽃향기는 짙어지며 신록은 그 아름다움을 더해갑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얘기 한가지가 생각납니다. 덴마크의 어느 훌륭한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그분은 유명한 덴마크 부흥 운동가 엔리코 달가스(1828-1894) 이더군요.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해 국토의 중요한 곳을 빼앗긴 덴마크를 부흥시키기 위해 그분이 전개했던 나무심기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에 힘입어 황폐했던 국토가 숲이 울창하고 윤택하게 됐다는 내용이었지요. 나는 그 내용 중 그가 했다는 말,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도로 찾자!”란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강하게 각인돼 있습니다.
아미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지지했던 사람이나 정치집단이 이번 선거에서 지는 바람에 언짢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니면 그 밖의 다른 일들로 힘들어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았을 수도 있겠지요.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까요? 사람마다 위기를 극복하거나 기분전환 하는 방법은 다를 것이기에 왕도는 없을 겁니다. 다만 저는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은 엔리코 달가스의 심정’으로 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엎질러진 언짢은 일에 계속 집착해 후회하고 한탄해봐야 달라질 게 없을 테니까요. “이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는 구절을 PC 첫 화면에 크게 써두고 일하던 옛 동료가 생각나네요.
저는 집주변 동산이나 공원, 그리고 서울 근교의 강이나 산 등을 산책하거나 등산 또는 걷기를 즐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일을 경험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현상도 보게 됩니다. 그것들을 즐기되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눈여겨 관찰합니다. 저는 자연과학자도 아니고 자연현상에 데한 깊은 지식도 물론 없습니다. 그렇지만 길섶의 이름 모를 작은 풀이나 들꽃을 보면 반갑고, 귀엽고, 예뻐서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떤 것들은 매년 같은 곳에서 솟아나 자랍니다. 또 다른 것들은 처음 보는 것일 수도 있고요. 나무의 새잎이나 꽃들도 지난해의 것들과 같은 게 아니지만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요. 봄이 절반쯤 지난 요즘은 각종 피고 지는 꽃들 못지않게 나무들의 새 잎새들이 빚어내는 연두색 신록이 한창입니다. 먼지에 찌들지 않은 연한 잎들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자연은 즐기는 사람에게만 즐거움을 준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고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세계를 가꾸는 게 바로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는 것’이겠지요? 오늘도 저는 짙은 미세먼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나무잎들의 합창을 들으며 걷습니다. 화단 한 편엔 분홍빛 철쭉들이 만발했고 새하얀 철쭉 한 그루도 보입니다. 세상의 온갖 잡음들이 이 길에선 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내일도 이런 길을 걷고 달릴 것입니다. 거기엔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혼자 끙끙 거리며 속끓인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일랑 훌훌 털어 버리고 연두빛 새잎들이 손짓하고 봄 햇살 빛나는 밖으로 달려 나오세요.
< 3024년4월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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