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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목포 누빈 韓硏선후배 1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4. 6. 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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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깊은 교회에서 순교자들 큰사랑 새겨

죽음까지 무릅 쓴 선교-희생에  할말잃어

人工과 自然의 멋진 조화와 絶景에 감탄

 

 

 

< 서울-지도-증도-병풍도 >


온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낙조가 펼쳐지는 해안 언덕.  하루 종일 내품던 열기가 아직도 남은 듯 불덩이처람 붉은 태양이 수평선 위 검은 해무 너머로 사라지려 한다.  그 붉은 낙조를 배경으로 뒷모습의 실루엣만  보이는 다섯분의 님자들은 어떤 생각에 젖어 있을까? 지나 온 한평생의 아름다운 추억들? 혈기 왕성했던 학창시절 품었던 높은 이상과 불만스런 현실과의 괴리에 대한 재조명? 아니면 뭔가 볼썽사나운 작금의 국내외 상황과 당신들의 처지에 대한 명상에 잠겨 있을까? 이들은 낙조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전남 신안군 증도면 우전리 해변에서 피곤했지만 즐거웠던 하루여정을 마무리 하는 50-60년전 대학시절 선후배들이다. 
 

 


서슬 퍼랬던 군사독재시절 정치민주화와 학원자유를 외쳤던 70-80대 선후배들과 그 부인들을 포함한 10명이  6월10일 아침6시50분 서울지하철 교대역 부근 골목길에서 만나 2박3일의 남도1000리 여행길에 올랐다.  교통체증이 심한 출근시간을 피했기에 우리가 탄 15인승 승합차는 고속도로 전용차선을 통해 빠르고 시원히게 남으로 달렸다. 솜씨좋은 요리전문가가 손수 만든 샌드위치와 준비한 음료, 커피로 차안에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즐기며 달렸다. 소풍가는 초등학생이라도 이보다 더 신나진 않았을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식사를 하며 경부고속도로룰 달려 천안에서 천안-논산 고속도로로 들어갔다. 차창밖의 산들은 밤꽃이 온 산을 허옇게 뒤덮고 있어그 일대가 밤 주산지 공주지역임을 알 수가 있었다. 초여름의 신록과 밤꽃이 연출하는 자연의 향연을 즐기며 우리는 부여백제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옅은 구름 너머로 아침해가 비치고 있어서 그런지 애조 띈 '꿈꾸는 백마강' 노래는 들려오지 않았다.
 


휴게소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20여분을 달리니 금강이 서해와 만나는 넓은 하구가 보였다.  우리는 서해안고속도를 타고 금강하구둑을 통과해  전라북도로 들어갔다. 대도시인 군산 시계를 벗어나니 부안과 고창, 무안의 산하가 잇따랐다. 학교때 사회 과목에서 배웠던 우리나라의 곡창지대 호남평야를 지나고 있었다. 또 금만평야를 비옥하게 하는 젓줄 동진강과 만경강도 건넜다. 무안으로 접어드니 창밖의 밭에 수확해서 널어 놓은 양파가 붉은 띠처럼 보였다. 맛좋기로 널리 알려진 무안 양파였다. 이윽고 우리는 칠산대교를 건너 무안군 해제면으로 갔다. 사방으로 온통 바다가 보여 섬으로 착각할 정도였지만 해제면은 좁고 갈게 이어진 땅으로 본토와 연결돼 있었다.
 


10시50분쯤 우리는 다리를 건너 신안군 지도읍으로 들어갔다. 신안군은 섬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도읍은 완전한 섬이지만 군데군데 벼가 지라는 논도 보여 섬같지가 않았다.


그런 섬길을 20여분 달려 임자대교를 건너 임자면 진리에 있는 48인순교자교회에 도착했다. '임자진리성결교회'가 병기돼 있는 이 교회에는 동족상잔의 뼈아픈 비극이 담긴 슬픈 사연이 새겨져 있었다. 교회앞 사각의 공터에는 맨 위에 커다란 십자가가 있는 기념탑이 하늘 높이 솟았고. 한자로 '四十八人殉敎記念塔' 아홉지가 세로로 길게 탑신에 새겨져 있었다.


탑 아래 검은색 동판에는 비극적 내용을 담은 봉헌문이 새겨져있다.
 
<----前略---석달에 걸친 공산치하에서 이판일장로와 그 가족 12명을 비롯하여 교우 48명이 붙잡혀 칼과 창에 찔려 쓰러지고 더러는 손발이 묶여 바다물에 던지우고 총에 맞고 혹은 갯벌 백사장 구덩이에 생매장 되었다.----後略--->
 


4각의 탑신 아래 두 개면에는 희생자 48인의 이름이 한글로 새겨져 있는데 이들 중 13명이 이판일 장로의 가족들이어서 더욱 우리를 슬프게 했다. 희생자 중엔 9살짜리 소녀도 있다. 기념탑앞에 서있는 팽나무와 쥐엄나무의 잎들만 미풍에  하늘 거리고 있었다. 이 나무들은 그때의 참상을 아는지는 모르겠다. 쥐엄나무는 성경에 나오는 집나갔던 탕자가 배고픔을 못이겨 먹었다는 돼지사료용 열매가 맺히는 나무인데 이스라엘에서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1932년7월 문준경전도사에 의해 설립된 이 교회는  이곳 섬마을 최초의 교회다. 그 자신도 1950년10월 공산적도들에게 참살당해 더욱 사람들을 슬프게 했다. 문전도사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사람들을 모은 후 복음을 전했는데 이판일장로 형제와 일가족 모두가 문전도사에 이끌려 기독교에 입교했다고 한다. 이 교회는 1943년12월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됐다가 해방으로 복원됐었다. 그렇지만 6.25전쟁 기간 이곳에서 밀실 기도를 하다 발각돼 엄청난 수난을 당하게 됐다. 문준경전도사도 일제때는 신사참배 거부로 목포경찰서에서 고문 당했고 6.25때땐 보안서에 끌려가 또 고문을 당했다.
 


문전도사는 국군의 수복후 목포에서 풀려나 주변의 만류에도 미수복지구인 증도로 돌아와 교우들을 보살폈다. 그러나 국군 진격을 앞두고 퇴긱하는 공산좌익 세력들이 10월5일 새벽 문전도사를 총살했는데 죄명이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전도사가 전도한 사람들 중 목사가 70명이 나온 것도 대단하지만 임자도 수복 후 국군과 함께 온 이판일장로의 아들 이인재씨의 용서는 더욱 가슴을 찌른다.


부역자 처벌을 위한 책임자였던 그는 가해자인 좌익세력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들 모두를 용서했다. 그 덕분에 이 섬에선 피의 보복 대신 평화의 땅이 회복될 수 있었던 것. 그는 훗날 목회자가 되어 가해자 자녀들의 결혼식 주례까지 맡았다. 그에 따르먄 부역자들을 총살하려는 순간  "아들아, 내가 그들을 용서하였으니  너도 그들을 용서하고 시랑하거라,"는 아버지 이판일장로의 음성이 들렸었다고 했다. 이 기도는 이판일 장로가 처형직전 죽음을 앞두고 한 기도였었다. 진리교회를 나온 우리들은 15분쯤 걸어 대파밭가에 서있는 비석으로 갔다. 그 비에는 "용서하라"는 이판일장로의 마지막 말이 새겨져 있어 숙연했다.
 


우리는 근처 해안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상표이름이 '딱 한잔'인 막걸리도 한 잔 반주했다. 해안가 광장에는 대형 민어 조형물이 서있어 이곳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고기가 민어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어 증도대교를 건너 증동리교회를 방문했다. 문준경전도사가 1935년에 설립한 교회다.


우리는 교회 뒷쪽 약100m 거리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 상정봉에 올랐다. 우전리 해수욕장이 눈아래 펼쳐지는 이 봉우리는 전망이 아주 좋았다.  우리는 이 상정봉에서 70m쯤 떨어진 기도바위에서 우전해수욕장을 바라보며 묵상하고 함께 여행을 한 김영호목사가 드리는 기도도 들었다. 이 바위 옆에는 문준경전도사가 '이 바위에서 바다를 보며 기도하셨습니다'고 새겨진 작은 나무판 표지비가 서있다.  되돌아 내려오는 숲속 길엔 순교자들의 사진과 마지막 기도문, 약력 등이 적힌 소형 표지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다.


증동리교회로 내려 온 우리는 약 한 시간을 달려 증도면 대초리교회로 갔다. 문준경전도사가 1935년에 세운 세번째 교회다. 대초도는 이웃 증도와 떨어진 섬으로 바닷물이 빠졌을 때만 드러나는 노두(路頭)길로 건너다닐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연결 도로로 이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이 섬 사람들은 증도 주민둘보다 보수적이어서 교회설립을 완강히 반대하고 전도 방해는 물론 문전도사에게 욕설과 폭행까지 해댔지만 결국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근자에 서양식으로 개축된 교회건물은 아름다운 교회로도 손꼽힌다.


교회옆에 있는 태평염전은 증도와 대초도 사이의 넓은 갯벌에 설치됐다. 면적이 여의도의 두 배나 되며 단일 염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고 소금 생산량 또한 국내 최다이다. 뿐만 아니라 재래식 방법으로만 천일염을 생산하는  이 염전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도 지정됐다. 그렇지만 일정이 빠듯해 염전과 소금박물관 견학은 하지 못 했다. 그런데 염전 근처의 소금제품이나 해산물 등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가 일행 중 한 분이 소지했던 물건 하나를 어딘가에 두고 온 사실을 일았다. 당장의 불편이야 없지만 아끼던 물건에 대한 아까운 마음이야 어찌하랴?.
 


널따랗게 펼쳐진 염전을 차창 너머로 구경하며 10분쯤 달려 우리들의 숙소가 준비된 엘도라도호텔 근처 해변에 도착했다. 오후5시 가까운 때여서 해가 서쪽 수평선을 향해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송이 들어찬 해변 솔숲에서 잠시 쉬고나서 우리는 주변 조먕이 좋은 엘도라도호텔에 들어갔다. 뙤약볕 아래서 히루를 보낸 탓에 땀에도 젖었고 피곤도 했다.


객실에서 샤워를 하며 피로를 풀고 수면위에 반짝이는 해질녘의 윤슬을 감상하며 여행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여유룰 맘껏 즐겼다. 그리고 다시 승합차에 올라 미리 예약해둔 근처의 맛집 '왕바위식당'으로 갔다.  바다쪽으로 약간 튀어나간 언덕 끝자락의 동쪽사면에 있는 전망좋은 집이었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물이 빠진 갯벌에 덩그라니 나앚은 소형배외 바닷가 바위에 세워진 소형 이충무공 동상 등 몇 장의 사진도 찍었다.

 


밥상위에 풍성하게 차려진 싱싱한 생선회는 우리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추호도 손색이 없었다. 함께 나온 수많은 반찬들도 일미였다. 종일 운전을 하느라 술 한잔 못 마신 후배 동료의 부러움을 무릅쓰고 나는  몇 잔의 반주도 즐겼다. 그는 다시 우리를 태우고 호텔로 가야해 안타깝게도 눈으로만 반주를 해야 했다. 벽시계가 7시10분을 알릴 때 우리들은 잠시 식사를 멈추고 음식점 앞 언덕위로 달려갔다. 이 언덕에서 감상하는 낙조는 서해안에서 몇 번째로 꼽히는 절경이다. 名不虛傳이란 말이 실감났다. 수면 바로 위에 떠있는 불덩이처럼 붉은 태양이 길게 붉은 꼬리를 물위에 드리우고있었다.


바다는 물론 해 주변의 하늘까지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다. 우리들은 석양 전체를 몽땅 카메라에 쓸어 담을 기세로 셔트를 눌러댔다. 그리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 저무는 태양과 더 붉게 변한 낙조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위대한 자연이 펼치는 장관앞에 모두 넋을 잃은 듯 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앉았다 낙조가 색을 잃어갈 때에야 식당으로 돌아갔다. 식사 후 호텔 객실에서 운전하느라 고생만 한 동료와 세 사람이 모여서 역간의 술을 마시며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눈 후 하루 일정을 마감했다.

 


다음날 아침 맑고 상쾌한 바닷가의 공기를 마시며 눈을 떴다. 같은 방에서 잔 선배는 한 발 앞서 산책을 나가셨다. 나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호텔 주변 산책로로 내려갔다. 아침 해무에 가려 해는 안 보였지만 푸른 솔밭과 만발한 접시꽃, 찰싹이며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너무 좋았다. 달리 그 광경을 표현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20여분을 혼자 산책하고 들어와 가방을 챙겨나와 7시에 함께 차를 타고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송도항 선착장 부근의 짱뚱어 식당이란다. 어제 달렸던 길을 되돌아 증도대교, 지도대교를 다시 건너 7시25분쯤 신안군 지도읍 읍내리 선착장에 있는 신안젓갈타운에 도착했다.


신안군 바다는 청정해역이어서  참게, 젓갈 등 신선하고 품질좋은 해산물이 풍부하단다. 여자들은 해산물을 살펴보러 갔고 운전을 책임진 동료는 병풍도로 건너갈 유람선 승선권을 예매하러 갔다. 할일이 없게 된 남자 다섯은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작은 섬으로 산책을 갔다. 섬까지 연결되는 긴 나무 데크 입구옆에 있는 대형 참게 조형물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섬은 모습이 거북이를 닮아 거북섬으로 불린다. 

 


데크 주변 바다는 물이 빠져나가 광활한 갯벌이 드러났고 붉은 색깔의 각종 염초들이 꽃처럼 예쁘게 무성해 경이로왔다. 데크 중간에서 만난 행인에게 부탁해 일행이 함께 기념촬영 후 소나무가 우거진 섬에 들어갔다.  10여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는 산책로를 따라 한 밬퀴 걸었다. 그리고 섬을 가운데로 가로 질러 넘어가 반대 방향으로 반 바퀴를 돌아 젓갈타운으로 돌아왔다. 일행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다는 게 여행자의 즐거움이리라.


입학동기였지만 목회활동으로 바빠 자주 만나지 못 했던 김영호목사와 깊은 추억담까지 나누며 걷는 즐거움은 더욱 컸다. 우리는 젓갈타운 바로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짱뚱어탕이 전문이어서 옥호 또한 '청해 짱뚱어'인데 반찬으로 나온 양파 김치, 멸치 젓갈, 곰삭은 김치 또한 지금까지 맛보지 못 한 일미였다. 좋은 경치 즐기며 맛있는 음식 맛보고 여유롭게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게 여행자의 특권임을 실감했다.

 
<  신안-목포여행  2에서 계 속  >  ---->  https://ih0717.tistory.com/263
 


<  2024년6월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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