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보던 나무, 꽃, 돌들에도 새로운 정감
꼭 멀리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야만 여행이고 즐거움 일까요? 항상 만나고 지나치는 집주변 길이나 동산도 생각에 따라서는 멋진 여행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한강이 가까운 곳입니다. 거기에다 야트막하고 전망좋은 동산들이 높낮이를 반복하며 남산까지 이어집니다. 그 동산들은 숲이 무성하고 산책로도 깔끔하게 정비돼 걷기에 정말 좋습니다. 또 각종 운동시설이나 쉼터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아침 이 동산들을 다니며 건강관리를 합니다. 그리고 수시로 아내와 함께 하는 산책도 즐깁니다. 아내는 체력이 저보다 약해 느리게 걷지요. 그렇지만 아내도 가볍게 걷는 걸 즐기니 비교적 자주 동반산책을 합니다.
며칠전에도 함께 나섰습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잔뜩 흐렸고 바람도 조금 서늘하게 불었습니다. 추석연휴가 지나고 첫번째 토요일 이었지요. 아내와 함께 가벼운 차림으로 서울 트레킹에 나선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뭔가 대단한 나들이로 여껴지겠지만 그런 건 아닙니다. 항상 보며 수시로 다녔던 가까운 동산길로 산책갔을 뿐입니다.
행선지가 조금 멀어 시간을 줄이려고 시내 버스롤 타고 다섯 정거장 떨어진 장충체육관 건너편에서 내렸습니다. 길을 건너 체육관 뒷쪽으로 지나가는 한양도성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은 한양도성을 따라 신라호텔~반얀트리
호텔~국립극장앞~남산 봉수대로 이어집니다.
성곽길에 들어서면 나무 그늘이 짙은 데다 지대가 높아 조망도 좋습니다. 좌우에 펼쳐지는 서울 시내 풍경과 외곽의 산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게다가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도 안 들리고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과도 거리가 멉니다.
아내와 나는 수시로 성곽길 이곳저곳을 걸으며 즐거움을 겸해 건강관리를 합니다. 이날은 구름이 햇살을 가린데다 바람이 서늘해 걷기엔 금상첨화 였습니다. 그렇게 걷다 숨차면 쉬며 물 마시고 간식하며 가노라니 국립극장앞 남산길에 닿았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산책객이 부쩍 많아집니다.
우리는 두 갈래길 중 남쪽의 하이야트 호텔쪽으로 난 길을 잡았습니다. 널찍한 일방통행 포장 도로이지만 일반 자동차는 못 다닙니다. 공무용이나 관광용 전기 버스만 다닐 수 있어 조용합니다.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무성한 나무들의 초록잎들엔 약간 누른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왼편의 시가지 너머로는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과 남서울 시가지가 끝없이 펼쳐집니다. 그 시가지 너머로는 청계산과 우면산, 관악산이 멋진 자태를 자랑하고요.
그렇게 오르면 서울의 랜드마크인 N타워가 하늘 높이 솟은 장관을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습니다. 팔각정과 봉수대가 있는 정상 근처 성곽안쪽엔 하얀 구절초가 만발했고 갈색 수술을 나부끼는 억새도 한창입니다. 봉수대옆 전망대에서 서울의 구도심과 북한산, 도봉산,수락산으로 이어지는 연봉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하산할 때는 성곽의 안쪽인 남산 북쪽 사면의 숲속으로 난 계단길을 걸었습니다.
장춘단공원을 지나 태극당앞 장충동 골목 먹자골목에서 늦은 점심을 즐기며 트레킹을 끝냈습니다. 이날 걸은 거리는 잘 모르겠지만 걸음 수는 약15,000보, 시간은 3시간20분쯤 걸렸네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초로의 아내와 지나간 시절 이 길들에서 공유했던 추억을 더듬고 닥쳐 올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만하면 멋진 트레킹 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다음엔 동대문에서 혜화문 구간 성곽길을 걸어볼까 합니다.
삶은 추억 만들기라고 하더군요. 그 추억들이 즐겁다면 삶도 덩달아 즐거워 지겠지요? 꼭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을 들여 멀리 떨어진 명소를 찾아가야만 기쁨이 배가 될까요? 행복은 가까운 곳에도 많이 숨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가을 가까운 곳에서 그런 행복의 소재들을 함께 찾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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